오동도 그 가시나는 / 김서곤 구름 끝에서 폴짝 인다 잡히지 않는 말간 새벽노을에 매달려 동백꽃 향기 흩날리면서 빠져나갈 틈도 없게 오동도 그 가시나는 내 가슴 조이는 큰 눈을 깜빡인다 방금 기지개 켜는 잔설 흥건한 봄빛을 베며 연기처럼 흩어진 민들레 꽃씨 날리는 기억인 줄 알았는데 너는 아직 가시였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모서리 뾰족해 아픈. [시인] 김서곤 경남 거창 거주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 대한문인협회 경남지회 정회원 <저서> 제1시집 <사랑 날 그리다> 제2시집 <의자가 있는 언덕> 제3시집 <오동도 그 가시나는> [시감상] 박영애 김서곤 시인의 <오동도 그 가시나는> 작품을 보면서 가슴에 품었던 사랑을 살포시 꺼내본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이별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그 지난 온 세월에 묻혀 오동도 그 여인과의 사랑도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가 다 잊은 줄 알았다. 어느 봄날에 오동도에 가니 함께 했던 사랑의 추억이 깊은 가슴에서 올라와 화자의 마음을 쿡쿡 찌른다. 흘러간 그 사랑이 아직도 가시가 되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낭송가]
바람, 저 미적분의 시간들 / 김상훈 제 생에 한 가지라도 부려 놓을 짐 없는 그는 어디로든 날아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광대무변의 배후 눈부신 빛 격랑마저 삼킬 땐 명도마저 흡수한 옷 벗어던지고 투명한 뼛조각을 드러낸 채 제 울타리에서도 숨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잔기침을 자주 듣다보면 그 속에 높고 낮은 구릉과 거대한 산맥이 똬리를 틀고 앉아있음을 느낀다 그가 쓸어안고 다니는 저 미적분의 시간들 태허의 음계를 안고 떠다니는 저 원초의 소리들 물이 없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아가미처럼 허공에 그의 꿈틀거림이 없었다면 이 지상에 과연 날개가 필요했을까 그는 존재하는 모든 도형을 품고 결연한 표정으로 언제나 마지막처럼 갔다가 그간 이바지한 노역들을 뒤로 하고 늘 처음처럼 온다 [시인/작가] 김상훈 서울 출생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대한문학세계 수필 부문 등단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 대한문인협회 수필, 소설 작가위원회 위원장 (사)한국연극협회부산지회 정회원 연극배우 저서 시집 《풀 각시 뜨락》 수필집 《벌목 당한 기억 사이로》 [시감상] 박영애 시인 김상훈 시인의 '바람, 저 미적분의 시간들'을 보면서 바람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시인만의 발상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 것은 /정상화(鄭相和)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 것은 서로의 향기에 취해 말없이 물들어가는 것이다 서로의 환경을 이해하고 서로 색깔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향기에 묻혀 가는 것이다 가슴에 나 하나 버리고 너 하나 채워서 서로의 가슴에 둥지를 짓는 일이다 여기서 저기로 가는 길 새로운 세상 둘이 하나 되어 서로의 가슴에 호흡하며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고 그보다 어려운 것은 인연을 곱게 지켜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연이 만들어 지기를 까만밤 하얗게 기도한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오소서... [시인] 정상화 - 아호 : 봄결 - 울산 울주 배내골 출생 - 시인, 수필가 - 전) 부산 한샘학원 강사(국어) -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 대한문인협회 울산지회장 -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 - 시와글벗 동인 <수상> - 2016년 한국문학 베스트셀러 작가상 - 2017, 2018, 2019 명인명시 특선시인선 선정 - 2017 한국문학 우수 작품상 - 2018 한국문학 올해의 최우수 작품상 - 이달의 시인, 금주의 시, 좋은 시, 낭송시 선정 <저서> - 제
우지마라 독도여 / 김락호 곧은 듯 부드러운 선 하늘 높은 곳까지 올려다보며 너는 세상에 외마디를 지른다. 오천 년 역사의 한 서린 아픔을 지켜보았노라고 벚꽃으로 위장한 칼날이 너의 살갗을 찢고 어미의 젖가슴에 어혈을 물들이고 아비의 입과 귀를 도려낼 땐 억지로 감춘 고통의 망령을 보아야만 했다. 해국이 만개한 돌 틈 사이와 거친 섬제비쑥에 숨겨두고 괭이갈매기 울음소리가 하얀 각혈로 바위를 물들일 때까지 눈물을 감추어야만 했다. 너는 거기서 누런 황소가 끌고 가는 꽃상여를 침묵으로 지켜보며 훌쩍이는 요령 소리에 아리랑을 숨겨야만 했다. 침묵으로 통곡을 노래하던 독도여 삼키지 못한 억겁의 한이 무거운 약속으로만 남지는 않을 테니 이제는 울음을 거두어라 시린 가슴을 안고 너도 하얗게 새벽을 지키며 희망을 품고 있지 않은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미래에 맑은 영혼의 소리를 해가 떠오르는 지평선에다 외치고 있지 않은가 구멍 숭숭 뚫린 몸뚱이는 이제 저 멀리 태평양을 지나 이랑을 만들고 꽃을 피우다가 열매 맺을 것이라고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가 이제 오천만이 하나 되어 너에게 무릎을 내어 쉬게 할 터이니 너는 이제 우지마라 우지마라 독도여.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낭송 최현숙)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 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시인 이원규]
불타는 시 / 나호열 (낭송 최경애)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의 화살이 동천 눈물 주머니를 꿰뚫었는지 눈발 쏟아지는 어느 날 저녁 시인들은 역으로 나아가 시를 읊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장미가 피고 촛불이 너울거리는 밤 누가 묻지 않았는데 시인들의 약력은 길고 길었다 노숙자에게 전생을 묻는 것은 실례다 채권 다발 같은 시집 몇 권이 딱딱한 베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둠한 역사 계단 밑에서 언 손을 녹이는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내리시는 무언의 시가 발밑에 짓이겨지는 동안 가벼운 재로 승천하는 불타는 시가 매운 눈물이 된다 아, 불타는 시 [시인 나호열]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담쟁이 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찾기』 『망각은 하얗다』 『아무도 부르지않는 노래』 『칼과 집』 『낙타에 관한 질문』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눈물이 시킨 일』 『촉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등 1991년 《시와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2004년 녹색 시인상 수상 [詩 감상 양현근] 눈발이 성성하게 흩날리는 날 눈발이 대지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낭송 홍성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시인 신경림] 1936년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학교 영문학 졸업 1955년 《문화예술》로 등단 2009년 호암상 예술상 수상 등 다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갈대』, 『뿔』, 『농무』 등 시그림집『달려라, 꼬마』 [감상 양현근] 이 시는 한 도시 근로자의 가난한 삶과 고뇌를 노래한 작품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고향을
지리산 / 조병기 (낭송 홍성례) 지상의 산이란 산은 모두 지리산에 와서 어깨를 겨루나 보다 천왕산을 에워싼 봉우리들이 구름 위의 병풍이라 물푸레나무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등이 휘젓는 하늘 지리산에 와서는 조릿대밭을 지나 호오리새 풀잎 건드리며 바람이 가라는 데로 따라갈 일이다 가다가다 무르팍이 꺾일지라도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의 길 더러는 바위 등 타고 앉아 다람쥐 산새들이랑 놀다가도 써늘한 숲 바람이면 떠밀려가야 한다 발시린 계곡물에 나를 버리고 나면 어느새 적막강산이 내려온다 사나흘이면 어떻고 백리 길이면 어쩌랴 커니 낯선 사람들로 왔다가 친구로 돌아가는 사이라 하지만 내가 나를 찾아 헤매다 가는 지리산은 아직도 꿑나지 않은 산의 길 아무도 모르는 가슴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시인 약력] 조병기 1940년 전남 장성 출생 성균관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72년《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산길을 걸으며』『바람에게』『가슴속에 흐르는 강(江)』『회귀의 바람』 등 제3회 한국시조시학회 시조시학상 등 수상 [감상 양현근] 지리산에 오르려거든 때묻은 마음과 온갖 번뇌는 기꺼이 벗어던지시라 그저 바람이 부는 데로 발자국이 닿는 데로 터벅
별 헤는 밤 / 윤동주 (낭송 최현숙)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1]', '라이너 마리아 릴케[2]'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낭송 조정숙)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는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시인 약력] 김현승 1913년 광주 출생(1975년 별세) 1934년 시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때 당신들은'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며, 암울한 일제시대 속에서도 민족의 희망을 노래한 〈새벽〉,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등을 발표, 1973년 서울특별시문화상 수상, 시집 『김현승시초(詩抄)』 등 [감상 양현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