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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상인과 예술가, 그 가운데서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조세금융신문=사샤) 오늘은 르네상스 예술작품의 주문자로 상인가문과 예술가들이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첨부된 그림은 지난호 글 말미에 보여드린 표입니다. 오늘은 이 중 바르디 가문과 지오토 디 본다네(1267~1337)와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바르디 가문과 예술가 지오토 이야기

 

지오토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막 시작되던 무렵 활동했던 이른바 원로 르네상스 예술가였습니다. 바르디 가문이 지오토에게 작품을 의뢰할 당시 이미 지오토는 유명한 예술가였지요. 당시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꼭 한 번씩 들렸다고 하는 아레나 예배당의 《최후의 심판》이 유명합니다.

 

우리가 지금 다루려고 하는 바르디 가문 이전의 일입니다. 아레나 예배당의 작품은  대를 이어 고리대금업자였으며 이탈리아 북부 조그만 도시였던 파두아의 성공한 유력가문이었던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주문한 것입니다. 당시 이름을 날렸던 지오토는 여러 주문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혼자 작업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수와 제자들을 여럿 두면서 작업을 이어갔는데요.

 

연구자들에 따르면 지오토는 최초의 아틀리에를 운영했던 예술가였다고 합니다. 지오토는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주문을 처리했던 때도 그랬던 것처럼 바르디 가문의 주문을 성실하게 이행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입니다. 

 

지오토에게 작품을 의뢰한 바르디 가문은 900년 경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주한 가문으로 성공한 토착귀족 대접을 받고 살았다고 합니다. 300년 전통의 피렌체 가문인 셈입니다. 토착귀족으로서 바르디 가문은 약 80여명의 사병도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부와 물리적 힘을 갖춘 가문이었다고 하네요. 유럽의 역사에서 전쟁 때마다 용병을 구해서 전쟁했던 것을 떠 올리면 한 가문이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죠.

 

이들 토착귀족가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신흥상인 메디치 가문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바르디 가문이 지오토에게 주문한 작품은 산타 크로체(신성한 십자가란 뜻이랍니다) 수도원을 꾸밀 용도였습니다. 이미 몇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이들이 수도원을 꾸민 것은 자신들의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실한 보장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금전적 욕망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산타 크로체 수도원의 경우에는 교황의 소유였기 때문에 다른 사례들과는 달랐습니다. 이 때문에 수도원 기도실에 그려질 벽화의 주제는 수도원이 결정했습니다. 당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가 산타 크로체 수도원의 소유주였습니다. 

 

그럼 바르디 가문은 돈만 주고 말았느냐?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수도원이 결정하고 바르디 가문이 돈을 대어 완성된 그림은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와 《재물의 포기》가 대표적입니다. 수도원이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주문한 것은 당시 교황측이 프란체스코파였기 때문입니다. 청빈과 가난을 주요한 모토로 삼고 있었던 프란체스코파는 현 교황의 파이기도 합니다.

 

이와 경합하던 파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부유하고 권력을 지향하던 모습으로 등장한 베네딕트파입니다. 수도원의 입장에서 자신들 파의 성자인 성프란체스코의 생애를 주문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겠죠.

 

《재물의 포기》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성프란체스코는 부유한 비단 상인의 외아들이었는데 부를 포기하고 청빈과 가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삶을 선택한 수도사인데요, 새로운 인생의 첫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수도원 측의 주문에 따라 그림이 그려진 것이고 바르디 가문은 돈 댄 것 말고 어떤 이득도 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재물의 포기》가 증거입니다. 수도원에서 주문한 그림은 성프란체스코의 기적에 관한 일들이었는데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재물의 포기》는 조금 결이 다른 작품이겠죠. 이 그림에 바르디 가문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지오토가 자신에게 돈을 준 바르디 가문의 사람들을 집어넣은 것이죠. 주문은 수도원에서 했지만 돈은 바르디 가문이 주었으니 지오토 입장에선 바르디가 갑이었던 것 아니었을까요? 

 

지오토의 《세속적 재물의 포기(Renunciation of Wordly Goods)》(1325년)

 

그림에서 보듯이 성프란체스코 주변에 웅성웅성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데 바로 바르다 가문의 사람들입니다. 이 그림에 기도실에 벽화로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바르디 가문 사람들이 성프란체스코의 권위에 기대어 일종의 신분상승하려는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피렌체 사람들이 기도실에 들어가서 성프란체스코의 측근 바르디 가문의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이죠. 벽화에 등장한 주요 인물은 리돌포 바르디와 그의 아들입니다.

 

원래 이 벽화의 모티브는 성프란체스코가 성당에서 그리스도상을 보다가 “나의 집을 세워라. 지금 나의 집이 황폐해져가고 있다”라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스러운 이야기에 바르디 가문 사람들이 등장한 것은 초기 르네상스 예술가로 추앙받았던 지오토의 비즈니스 결과물이었다고 보여지네요.

 

바르디 가문이 교회로부터 얻었던 것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노켄티우스 4세는 산타 크로체 수도원에 거주하는 수도사들에게 이단 종교재판권을 부여했는데요. 이게 바르디 가문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가 주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단으로 몰리게 되면 무시무시한 형별을 피할 수 없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강제로 성지순례를 떠나야 했답니다. 말이 성지순례이지 추방이나 다름없었고요, 모든 재산이 몰수되며 몰수된 재산은 3개월 이내에 처분되어야 했답니다.

 

이 처분이란 게 재미있는데요. 마치 경매법원에서 입찰 받는 것처럼 헐값에 매각됩니다. 이렇게 나온 대부분의 자산은 바르디 가문과 당시 또 다른 유력 가문이었던 프레스코발디 가문이 거둬들였다고 합니다. 엄청난 재산을 가지게 되는 거죠. 마치 조선 후기 흉작이 들어 자영농들이 양반들에게 자신의 땅을 빚 대신 바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사정이 이렇게 되자 바르디 가문은 직접 나서서 교회의 직원이 되기 시작합니다. 앞다퉈 교회의 일원이 되기 시작하였는데요. 바르디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바르디 가문은 39명의 자손이 있었는데요, 이 중 18명이 산타 크로체 수도원의 수도사가 됩니다.

 

앞서 언급했던 리돌프 바르디는 자신의 외동딸마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운영하던 수녀원으로 보낼 정도로 교회의 직원이 되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제 이단재판권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바르디 가문은 경쟁적인 가문들의 강탈의 방편으로 이단재판권을 활용할 수 있었겠죠.

 

제 이야기가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폄훼하는 것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당연이 지오토의 산타 크로체 벽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후원자와 예술가의 작품의지 등과 관련하여 여러 생각들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다음호에서는 메디치 가문의 화려한 예술 편력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갖고 찾아뵙겠습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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