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1 (수)

  • 맑음동두천 3.6℃
  • 맑음강릉 8.8℃
  • 구름많음서울 4.7℃
  • 맑음대전 5.8℃
  • 연무대구 6.2℃
  • 맑음울산 8.5℃
  • 맑음광주 4.4℃
  • 맑음부산 10.3℃
  • 맑음고창 3.8℃
  • 맑음제주 9.1℃
  • 흐림강화 2.0℃
  • 맑음보은 2.4℃
  • 맑음금산 2.8℃
  • 맑음강진군 5.1℃
  • 맑음경주시 7.1℃
  • 맑음거제 7.8℃
기상청 제공

문화

[양현근 시인의 詩 감상]금목서(金木犀)_최형심


금목서(金木犀)_최형심


마침내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발등 위로 가을이 와서 우리는 강의실로 갔다.
시월의 강의실에 앉으면 자꾸만 창문이 낮아져

생인손을 앓던 나무들이 들어와 앉고 날개를 펼친 책들이 목성을 지났다.
목이 긴 유리병이 금목서 향기에 졸고 있던 창가

남학생들은 혀가 짧은 새들의 거짓말을 기억했을까.


주술에 걸린 노트 속,

수요일의 수거함에 모인 문장에선 간혹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입술의 흔적이 발견되곤 했다.
자정의 몽타주 아래 외투를 벗고 간절해지는 간절기를 지나왔다고

낡은 자막 아래 회전하는 영사기들에게 청춘의 혐의를 물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저 도서관에 앉아 빵처럼 성숙해졌다.


나날이 두꺼워지는 여권을 가진 우리는

종이컵을 물고 늘어졌고

우산을 잊은 그림자들은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남자애들을 그리워하면서 하얀 서류봉투 곁을 지켰다.
팝콘처럼 순결한 꿈을 가진 불법체류자가 되고 싶었다.
붉은 여권을 닮은 낙엽이 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짙은 녹색의 칠판만을 대면했다.
어느 날 눈먼 사진사가 찾아와 머리를 감겨주었을 때

오래된 종이감옥에서 한 무리의 참회자들이 걸어 나왔다.


이제는 나비를 모른 척할 나이,

눈으로 만들어진 사람과 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길과 요일을 혼동한다.
신입생 시절이 창세기보다 멀다.


詩 감상

모든 것이 황홀했던 그 시절,

시월의 강의실 너머로 스며들던 금목서 등황색 꽃향기는 왜 그리 아득했을까.
자꾸만 낮아지는 창문으로 하늘이 날아와 앉고,

책갈피에서는 종종 눅눅한 언어들이 발견되곤 했었지.
동시상영관의 흐릿한 자막 속을 타고 흐르던 이름들이여.
간절기를 지나 온 붉은 기억들이여.
뜨거웠던 한 시절의 혐의를 금목서에게 묻는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가상자산과 쥐(rat)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최근 가상자산 ‘오지급’ 사고가 발생했다. 단순한 입력 실수, 이른바 팻핑거(fat finger)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숫자 하나를 잘못 눌렀을 뿐인데, 그 결과는 62조 원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 번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거래소는 바로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이달 말 도입할 예정이었다. 기술은 준비되고 있었지만, 실수는 그보다 빨랐다. ​이런 일은 결코 낯설지 않다. 몇 해 전 한 중견 수출업체가 수출 실적을 달러가 아닌 원화로 신고하는 바람에, 국가 전체의 수출액이 10억 달러나 과다 계상되는 일이 있었다. 첨단 시스템과 자동화가 일상화된 시대지만, 휴먼에러는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사람의 실수’를 전제로 한 제도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가상자산은 분명 편리하다. 국경을 넘는 송금은 빠르고, 비용은 적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비대면·익명성이 강하고 사용자 확인이 어려운 특성 탓에, 돈세탁이나 사기, 불법 외환거래에 악용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범죄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특히 가상자
[인터뷰] 뮤지컬 '4번출구' 제작 김소정 대표...청소년 ‘삶의 선택지’ 제시
(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무대 위에서 가장 조용한 숨으로 깊은 소리를 만드는 오보에처럼, 이제는 소외된 아이들의 숨소리를 담아내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보이스트에서 공연 제작자로 변신한 주식회사 스토리움의 김소정 대표가 뮤지컬 〈4번 출구〉를 통해 청소년 생명존중 메시지를 전한다. 2026년 청소년 생명존중 문화 확산 사업 작품으로 선정된 이번 뮤지컬은 김 대표가 연주자의 길을 잠시 멈추고 제작자로서 내딛는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다. 공연 제작자 김소정 스토리움 대표 인터뷰 내용을 통해 '4번출구'에 대해 들어봤다. ■ 완벽을 추구하던 연주자, ‘사람의 삶’에 질문을 던지다 김소정 대표는 오랫동안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해온 오보이스트다. 예민한 악기인 오보에를 다루며 늘 완벽한 소리를 향해 자신을 조율해왔던 그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숨을 쏟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면서 “완벽한 소리를 위해 버텨온 시간이 누군가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개인의 완성을 넘어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무대를 꿈꾸게 됐다”고 제작사 ‘스토리움’의 설립 배경을 밝혔다. ■ 〈4(死)


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