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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 유통 · 의료

아삭한 양파는 옛말…자취 감춘 ‘진짜 간짜장’ [유통노믹스]

시급 1만3000원 시대…3분 웍질은 ‘사치’
“힘든 일 안 한다”…6년 새 중식 조리사 47% 급감
‘가짜’가 ‘진짜’ 밀어내는 배달 앱 ‘레몬 시장’

 

(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 서울 강남구의 직장인 최모(35)씨는 최근 점심 식사 중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갓 볶아 아삭해야 할 양파는 숨이 죽어 있었고, 소스는 물을 탄 듯 묽었다. 최씨는 “미리 끓여둔 소스를 데워 내놓은 ‘무늬만 간짜장’에 제값을 다 내자니 속은 기분”이라고 했다.

 

동네 중국집의 상징이던 ‘진짜 간짜장’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주문 즉시 춘장과 식재료를 센 불로 볶아내는 ‘노동 집약적 미식(美食)’이 소멸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소비자들의 원성은 높지만, 주방의 계산기는 냉혹하다. 이는 단순한 상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고비용·구인난이 빚어낸 한국 자영업의 구조적 모순이 짜장면 한 그릇에 투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 ‘3분 웍질’이 사치가 된 고비용 시대

 

조리 공정을 보면 두 메뉴의 차이는 명확하다. 일반 짜장이 대량으로 끓여둔 소스를 사용하는 ‘일괄 생산’이라면, 간짜장은 주문과 동시에 조리를 시작하는 ‘주문 생산’ 방식이다.

 

문제는 현대 외식업의 비용 구조가 더 이상 ‘주문 생산’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6년 최저임금(1만320원)을 반영한 실질 시급은 1만3000원(주휴수당 등 포함)을 웃돈다. 점심시간 2시간에 매출을 집중해야 하는 오피스 상권에서 셰프 한 명이 웍(Wok) 하나를 3~4분씩 독점하는 것은 치명적인 병목 현상을 유발한다.

 

마포구의 한 중식당 대표는 “간짜장 하나를 볶을 시간이면 일반 짜장 5그릇을 뺄 수 있다”며 “회전율이 생명인 점심 장사에서 정통 간짜장은 팔수록 손해”라고 토로했다. 결국 미리 볶아둔 춘장에 양파만 섞어 내는 편법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굳어졌다.

 

 

◆ 끊겨버린 웍의 대(代)…“후계자가 없다”

 

비용을 감당하려 해도 정작 웍을 잡을 인력은 갈수록 줄고 있다. 중식 조리의 핵심인 숙련공의 맥(脈)이 점차 끊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중식조리기능사 자격 취득자 수는 2019년 6,899명에서 2024년 3,609명으로 6년 만에 47% 급감했다. 지름 40cm가 넘는 무쇠 팬을 끊임없이 돌려야 하는 고강도 노동을 감당할 ‘젊은 웍’이 부족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정체된 상황에서 비용 부담만 가중되는 ‘보몰의 비용 병(Baumol's Cost Disease)’ 현상으로 진단한다. 제조업은 자동화로 생산성을 높여 임금 상승분을 상쇄했지만, 짜장면을 볶는 일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셰프의 손목 힘에 의존하는 ‘생산성 정체’ 구간에 머물러 있다. 인력난과 인건비 급등의 이중고(二重苦) 속에 정통 조리법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 배달 앱이 부추긴 ‘레몬 시장’의 역설

 

배달의민족·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의 보편화도 정통 방식을 시장에서 밀어내는 요인으로 꼽힌다. 경제학에서는 구매자가 제품 품질을 정확히 알 수 없어 결국 저품질의 물건만 남는 상황을 ‘레몬 시장(Lemon Market)’이라 부른다.

 

앱 속 화려한 음식 사진만으로는 이것이 주문 즉시 볶은 것인지, 미리 만든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소비자가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오직 ‘배달 시간’과 ‘별점’ 뿐이다. 주문 즉시 볶느라 10분이 넘게 걸리는 정직한 식당은 ‘배달이 늦다’며 외면받고, 미리 만든 소스를 1분 만에 담아 보내는 식당이 랭킹 상단을 차지한다. 정보의 비대칭이 성실한 조리를 ‘비효율’로 낙인찍고, ‘가짜’가 ‘진짜’를 구축(crowding-out)하는 악순환을 고착화했다.

 

 

◆ ‘3마리 토끼’는 없다…저비용 미식의 종말

 

가격 인상을 통해 품질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짜장면=서민 음식’이라는 고정관념 탓에 가격 저항선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파스타의 2~3만 원은 ‘분위기 값’으로 용인하지만, 짜장면 가격 인상에는 “초심을 잃었다”며 등을 돌리는 이중적인 소비 심리가 작용한다.

 

실제로 시장에서 두 요리에 적용하는 ‘경제적 잣대’는 확연히 다르다. 짜장면은 허기를 채우는 ‘생존 소비’로, 파스타는 분위기를 사는 ‘경험 소비’로 인식되면서 지출 심리 자체가 양극화됐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결국 식당들은 양을 줄이거나 재료의 질을 낮추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을 택하거나, 아예 메뉴판에서 ‘간짜장’을 지우고 있다.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어 ‘포기’를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기대하는 ‘저렴하고, 빠르며, 맛있는’ 간짜장은 이제 현실에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됐다. 맛과 속도, 가격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가성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신호다.

 

도심 곳곳에 정통 방식을 고집하는 노포(老鋪)들이 남아있지만, 주방을 지키는 이들은 대부분 고령의 1세대 조리사들이다. 젊은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의 은퇴는 곧 정통 간짜장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의 한 30년 업력 중식당 주방장은 “간짜장은 조리사의 체력을 갈아 넣어야만 맛이 나는 음식이라 요즘 젊은 층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며 “우리 세대가 지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메뉴가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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