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2 (토)

  • 흐림동두천 21.8℃
  • 구름많음강릉 25.1℃
  • 연무서울 22.1℃
  • 구름많음대전 23.5℃
  • 흐림대구 25.9℃
  • 구름많음울산 25.6℃
  • 흐림광주 20.5℃
  • 구름많음부산 21.5℃
  • 흐림고창 20.8℃
  • 흐림제주 19.7℃
  • 흐림강화 18.2℃
  • 구름많음보은 22.9℃
  • 흐림금산 22.3℃
  • 흐림강진군 20.9℃
  • 흐림경주시 25.6℃
  • 흐림거제 23.2℃
기상청 제공

[양체재의(量體裁衣)] '무오류'의 신화는 '견제'를 통해 깨진다

'양체재의(量體裁衣)’란 일을 실제 상황이나 형편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입니다. 평소 법률과 정책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그에 맞도록 만들어지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문병윤 변호사의 주장이 담긴 연재물이기도 합니다.  

 

(조세금융신문=문병윤 변호사) 지난해 말 정경심 사건에서 공소장 변경을 두고 법원과 검찰이 설전을 벌였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재미있는 점은 재판장이 공소장변경 불허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에게 했다는 얘기다.

 

‘검사님, 재판부는 토론하고 합의해서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결정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검사들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합니까’.

 

판사마저 답답함을 내비친 검찰의 ‘무오류 신화’에 대한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보도한 MBC에 대한 강압수사를 반대하다가 검찰을 떠난 임수빈 변호사도 비슷한 지적을 한 적이 있다.

 

국가권력의 무오류 신화는 국민의 기본권과 밀접한 수사와 기소에서 두드러졌을 뿐이다. 건물을 가진 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우는 소방청의 화재 안전조사,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현지조사 등 오히려 국민이 크게 체감하는 분야는 바로 행정청의 각종 조사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행정소송을 진행하다보면 행정청이 어디든 비슷한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사건기록을 받아보면 일단 행정청의 처분사유는 매우 추상적으로 제시되어 있고, 처분사유의 증거로는 처분 대상자가 작성한 사실 확인서가 대부분이다.

 

이해하기 쉽게 범죄수사에 비유하자면 공소장의 범죄사실에 일시·장소 등이 특정되지 않은데다 증거는 피고인의 자백이 전부인 셈이다.

 

검사가 피고인을 기소할 때는 ‘3월에 종각역’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는데 재판이 진행되다 보니 3월이 아니라 7월이고, 종각역이 아니라 강남역이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일시, 장소를 바꾼다면 피고인은 알 수 없는 범죄사실과 끝도 없이 싸워야 한다.

 

더욱이 그 증거가 피고인의 자백뿐이라면 유죄로 인정되지 않는다. 우리 헌법 제12조 제7항은 피고인의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에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고문, 폭행, 협박, 부당한 인신구속 등으로 자백을 받아내던 관행을 금지하기 위한 조치다.

 

형식적 동의에 의한 광범위한 자료제출도 문제다. 검사가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법원에 그 사유와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영장을 청구해야 하고 법원은 그 타당성을 검토한 후에 영장을 발부한다. ‘주거지’라고 명시하면 주거지만 할 수 있고, ‘신체’라고 명시하면 신체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포괄영장금지원칙’이다.

 

반면, 행정조사는 강제처분인 영장청구권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행정조사를 받는 사람은 ‘다 가져와보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즉, 신체든 주거지든 사무실이든 어디에 있는 자료이든 알아서 가져오라는 요구다. 제출을 거부해도 상관없지만, ‘제출하는 게 서로 좋지 않겠느냐’는 말에 ‘못하겠다’고 버틸 수 있는 대상자는 거의 없다.

 

불응시 입게 될 불이익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건강보험법 같은 경우에는 자료제출요구에 응하지 않은 자를 처벌하는 형사 처벌규정까지 두고 있다.

 

대법원은 ‘행정조사는 수사기관의 강제처분과는 다르기 때문에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형사법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고, 행정조사 시에 작성된 사실 확인서의 증거가치를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문제는 행정청의 행정조사가 형사고발로 이어지고,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형사재판에 증거로 제출되어 결국 유죄로 인정된다는 점이다.

 

경찰의 수사과정에 대한 견제는 유래가 깊다. 경찰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의자가 부인하면 곧바로 증거능력을 상실한다. 강압과 회유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은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에서 강제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 전과정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변호인의 조력을 얻을 권리가 철저히 보장된다. 각종 형사법 원칙이 도입된 이유를 살펴보면 행정조사와 다르지 않다. 행정조사도 이러한 견제가 시작되어야 한다.

 

국가권력의 ‘무오류 신화’는 달콤하다. 문제는 국가기관에는 달콤하지만, 국민에게는 쓰디 쓸 뿐이라는 사실이다.

 

행정청이 지금처럼 형사절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영장주의, 자백배제법칙,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등의 견제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개선은 가능할까? 역사를 보면 자체개혁이라는 말은 언제나 사‘명’으로 분식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프로필] 문병윤 법률사무소 수영 대표변호사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 사시 54회(사법연수원 44기)
• 국회 보건복지위 행정안전위 비서관
•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가상자산과 쥐(rat)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최근 가상자산 ‘오지급’ 사고가 발생했다. 단순한 입력 실수, 이른바 팻핑거(fat finger)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숫자 하나를 잘못 눌렀을 뿐인데, 그 결과는 62조 원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 번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거래소는 바로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이달 말 도입할 예정이었다. 기술은 준비되고 있었지만, 실수는 그보다 빨랐다. ​이런 일은 결코 낯설지 않다. 몇 해 전 한 중견 수출업체가 수출 실적을 달러가 아닌 원화로 신고하는 바람에, 국가 전체의 수출액이 10억 달러나 과다 계상되는 일이 있었다. 첨단 시스템과 자동화가 일상화된 시대지만, 휴먼에러는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사람의 실수’를 전제로 한 제도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가상자산은 분명 편리하다. 국경을 넘는 송금은 빠르고, 비용은 적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비대면·익명성이 강하고 사용자 확인이 어려운 특성 탓에, 돈세탁이나 사기, 불법 외환거래에 악용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범죄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특히 가상자
[인터뷰] 뮤지컬 '4번출구' 제작 김소정 대표...청소년 ‘삶의 선택지’ 제시
(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무대 위에서 가장 조용한 숨으로 깊은 소리를 만드는 오보에처럼, 이제는 소외된 아이들의 숨소리를 담아내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보이스트에서 공연 제작자로 변신한 주식회사 스토리움의 김소정 대표가 뮤지컬 〈4번 출구〉를 통해 청소년 생명존중 메시지를 전한다. 2026년 청소년 생명존중 문화 확산 사업 작품으로 선정된 이번 뮤지컬은 김 대표가 연주자의 길을 잠시 멈추고 제작자로서 내딛는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다. 공연 제작자 김소정 스토리움 대표 인터뷰 내용을 통해 '4번출구'에 대해 들어봤다. ■ 완벽을 추구하던 연주자, ‘사람의 삶’에 질문을 던지다 김소정 대표는 오랫동안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해온 오보이스트다. 예민한 악기인 오보에를 다루며 늘 완벽한 소리를 향해 자신을 조율해왔던 그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숨을 쏟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면서 “완벽한 소리를 위해 버텨온 시간이 누군가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개인의 완성을 넘어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무대를 꿈꾸게 됐다”고 제작사 ‘스토리움’의 설립 배경을 밝혔다. ■ 〈4(死)


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