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3 (금)

  • 흐림동두천 6.6℃
  • 맑음강릉 13.7℃
  • 연무서울 7.8℃
  • 박무대전 11.2℃
  • 맑음대구 13.6℃
  • 맑음울산 14.7℃
  • 연무광주 11.9℃
  • 맑음부산 12.7℃
  • 맑음고창 11.5℃
  • 맑음제주 13.9℃
  • 흐림강화 6.8℃
  • 맑음보은 10.8℃
  • 맑음금산 11.3℃
  • 맑음강진군 12.1℃
  • 맑음경주시 13.3℃
  • 맑음거제 10.1℃
기상청 제공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맛있었다. 떡볶이도 그랬다. 동네 분식집에서 5개에 50원이던 떡볶이는 ‘사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늘 ‘동경의 맛’에 가까웠다. 어느 날은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5개 값을 내고 6개를 집어 먹은 적도 있다. 주인 할머니 몰래 떨리던 손,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작은 죄책감은 지금도 떡볶이를 떠올릴 때마다 어딘가에서 함께 피어난다.

 

어릴 적 여름이면 집에서 키우던 닭을 어머니가 직접 잡아 삼계탕을 끓여주시곤 했다. 지친 몸을 단숨에 회복시켜 주던, 그야말로 우리 집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서울세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삼계탕을 밀키트 형태로 수출하려는 기업을 대상으로 FTA 컨설팅을 한 경험도 있다. 요즘 삼계탕 수출이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한국인의 보양식이 이제 세계인의 원기 회복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때의 꿈같은 간식이 이제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시골 분식집에서 먹던 그 떡볶이가 뉴욕과 파리의 마트 진열대에 당당히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보면 한국의 삶과 맛이 바다를 건너 세계인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자체로 한 편의 긴 성장담이다.

 

K-콘텐츠가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으면서 K-푸드의 영역도 자연스레 넓어지고 있다. 노래와 드라마, 웹툰이 한국의 감성을 소개하면 라면·떡볶이·김치·고추장이 그 감성을 혀끝으로 확인시킨다. 문화가 마음을 열면 음식이 그 마음을 채운다. K-컬처와 K-푸드는 그렇게 서로의 길을 밝혀주며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가끔 해외에서 떡볶이가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어린 시절 분식집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맛이 이제는 국경을 넘어 ‘새로운 언어’처럼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얼마 전 전북 김제의 냉동밥·즉석식품 수출기업인 ㈜한우물을 찾았다. 미국 통상 환경 변화로 불확실성이 컸지만, 기업은 묵묵히 세계 시장을 향해 제품을 수출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단순히 밥을 파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식탁을 세계로 보내는 마음입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한국과 미국 간 팩트시트 공표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대표는 여전히 걱정을 털어놓았다. “수출 환경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라고.

 

 

돌아오는 길, 회사 이름 ‘한우물’을 떠올리며 삼행시를 지어드렸다.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한우물
(우) 리나라 최고의 기업이 되시길 바랍니다
(물) 심양면으로 관세청이 지원하겠습니다
말은 짧아도 마음이 담기면 전해진다. 대표의 웃음에서 그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K-푸드가 세계로 뻗어가는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K-관세행정의 손길이 조용히 개입되어 있다.

 

원산지 증명, FTA 적용, 복잡한 통관 절차…기업에게는 낯설고 부담스러운 과정이지만 이 문턱 하나가 수출의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관세청은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원산지 확인서를 과감히 간소화하고, 관계기관의 인증서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원산지증명서 간소화 개선은 수출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을, 업무를 수행하며 여러 차례 체감하였다. 냉동·신선식품의 통관 시간을 줄이기 위한 제도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처럼 외부 변수는 언제든 찾아오지만 관세청은 기업의 어깨가 흔들리지 않도록 정책·정보·행정으로 묵묵히 받쳐주고 있다.

 

K-푸드의 성장에는 기업의 땀뿐 아니라 이렇듯 보이지 않는 관세국경관리의 섬세한 손길도 함께 스며 있다.

 

살아보니 세상에서 둥근 것은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늘 보름달처럼 둥글었다. 빈속에도 나를 먼저 챙기셨던 그 마음이 작은 비닐봉지 한 봉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K-푸드를 만들고 세계로 보내는 기업들도 어쩌면 그 둥근 마음의 일부를 이어가는 사람들 일지 모른다. 정성과 품질, 그리고 한국인의 따뜻한 정서를 담아 식탁 하나, 제품 하나에 마음을 얹어 전한다.

 

관세청이 해야 할 일은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착지까지의 길을 닦고 지켜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보름달이 밤을 밝히듯 행정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업의 길을 비춘다.

 

그 밝음이 이어져 언젠가 K-푸드가 세계인의 식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한 조각이 되는 날까지,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현장을 향해 손을 내밀 것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가상자산과 쥐(rat)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최근 가상자산 ‘오지급’ 사고가 발생했다. 단순한 입력 실수, 이른바 팻핑거(fat finger)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숫자 하나를 잘못 눌렀을 뿐인데, 그 결과는 62조 원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로 번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거래소는 바로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이달 말 도입할 예정이었다. 기술은 준비되고 있었지만, 실수는 그보다 빨랐다. ​이런 일은 결코 낯설지 않다. 몇 해 전 한 중견 수출업체가 수출 실적을 달러가 아닌 원화로 신고하는 바람에, 국가 전체의 수출액이 10억 달러나 과다 계상되는 일이 있었다. 첨단 시스템과 자동화가 일상화된 시대지만, 휴먼에러는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사람의 실수’를 전제로 한 제도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가상자산은 분명 편리하다. 국경을 넘는 송금은 빠르고, 비용은 적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비대면·익명성이 강하고 사용자 확인이 어려운 특성 탓에, 돈세탁이나 사기, 불법 외환거래에 악용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범죄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특히 가상자
[인터뷰] 뮤지컬 '4번출구' 제작 김소정 대표...청소년 ‘삶의 선택지’ 제시
(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무대 위에서 가장 조용한 숨으로 깊은 소리를 만드는 오보에처럼, 이제는 소외된 아이들의 숨소리를 담아내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보이스트에서 공연 제작자로 변신한 주식회사 스토리움의 김소정 대표가 뮤지컬 〈4번 출구〉를 통해 청소년 생명존중 메시지를 전한다. 2026년 청소년 생명존중 문화 확산 사업 작품으로 선정된 이번 뮤지컬은 김 대표가 연주자의 길을 잠시 멈추고 제작자로서 내딛는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다. 공연 제작자 김소정 스토리움 대표 인터뷰 내용을 통해 '4번출구'에 대해 들어봤다. ■ 완벽을 추구하던 연주자, ‘사람의 삶’에 질문을 던지다 김소정 대표는 오랫동안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해온 오보이스트다. 예민한 악기인 오보에를 다루며 늘 완벽한 소리를 향해 자신을 조율해왔던 그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숨을 쏟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면서 “완벽한 소리를 위해 버텨온 시간이 누군가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개인의 완성을 넘어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무대를 꿈꾸게 됐다”고 제작사 ‘스토리움’의 설립 배경을 밝혔다. ■ 〈4(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