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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칼럼] 진짜, 서울식 해장국 -40여년 노포 대화정 해장국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사람 냄새 진하게 풍기는 곳이라면, 시장만 한 데가 또 있을까.

 

어깨를 스치며 지나는 인파, 좌판 너머로 오가는 흥정의 소리, 어깨너머로 퍼지는 국물 냄새…. 오일장은 물론, 늘 문을 열어 둔 상설시장도 사람들로 들끓는다. 서울 동대문 일대는 그런 시장들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난장’이다. 동대문종합시장, 평화시장, 광장시장에 더해 패션빌딩, 방산시장, 중부시장, 신당동 중앙시장까지—골목과 골목이 잇닿아 하나의 도시처럼 이어진다.

 

쌀쌀한 새벽녘, 도심을 어쩔 수 없이 떠돌아야 했던 기억이 있다. 오래전, 말레이시아에서 온 친구들과 열흘 남짓 전국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 동대문 인근의 한 호텔에 묵었다. 친구들은 체크인하자마자 쇼핑 삼매경에 빠져 각자 동대문 쇼핑센터로 흩어졌고, 나는 그 틈을 타 오랫동안 비워뒀던 사무실에 들러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나와 같은 방을 쓰기로 한 룸메이트는 칠순을 넘긴 말레이시아 친구였는데, 그가 잠들면서 객실 문에 ‘세이프 가드’를 걸어버린 것이었다. 노인이 깊은 잠에 빠지자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걸어도 반응이 없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난처하기 이를 데 없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호텔 로비를 나와 거리로 나섰다. 동대문 밤거리는 여전히 휘황찬란했다. 어차피 이리된 김에 허기도 달랠 겸, 소주 한 잔 곁들여 밤을 보내자는 생각으로 불이 켜진 해장국집을 찾았다. 그렇게 발길이 닿은 곳이 바로 ‘대화정’이라는 이름의 해장국집이었다. 간판보다 ‘진짜 해장국’이라는 별칭으로 동대문 상인들 사이에서 더 잘 알려진, 40년 노포였다.

 

 

 

 

뚝배기 안엔 큼지막한 소뼈와 선지, 우거지가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서울식 해장국 특유의 덜 맵고 자극적이지 않은 국물, 진하게 우러난 사골 육수에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추고, 우거지로 달큰한 맛을 낸 국물은 속을 편안히 감쌌다. 그 위에 선지가 올라가면 비로소 서울식 해장국이 완성된다.

 

선지는 의외로 까다로운 재료다. 신선하지 않으면 누린내가 나고, 삶는 방식에 따라 식감이 달라진다. 대화정의 선지는 부드러우면서도 식감이 살아 있고 잡내 없이 훌륭했다. 무엇보다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천연 재료의 맛만으로 우려낸 국물이라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십여 년 세월을 그렇게 끓여온 이 집 해장국은 동대문 새벽시장을 지키는 상인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는, 말 그대로 ‘든든한 친구’였다. 특이한 점은, 그 긴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24시간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장국과 함께 주문한 소주 한 병을 천천히 나눠 마셨다. 우거지와 선지, 그리고 국물 한 숟갈이면 소주 뒷맛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천천히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뚝배기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따뜻한 국물에 술기운이 스르르 풀리고, 속이 든든해지니 다시 거리로 나설 힘이 생겼다. 밤공기는 여전히 싸늘했지만, 마음만은 든든했다.

 

다음 날 아침, 룸메이트는 연신 “미안해! 미안해!”를 외쳤다. 평소 문을 잠그고 자는 습관 탓에 무심코 세이프 가드를 채웠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하룻밤 노숙자 신세가 됐지만, 그 대신 잊지 못할 따뜻한 해장국 한 그릇을 만났으니 나름 괜찮은 ‘보상’이었다. 다음엔 매운 해장국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데려와 보여주고 싶다. 서울식 해장국의 부드럽고 깊은 속풀이 맛, 이곳 ‘대화정’에서야말로 제대로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동대문 주변 둘러보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곡선미가 인상적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과거 운동장 터 위에 세워진 미래형 문화공간이다. 유려한 외관은 낮엔 빛을, 밤엔 네온을 반사해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며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부에는 전시관, 디자인숍, 패션몰이 어우러져 있고, 주변에는 어울림광장과 꽃길이 조성돼 걷기에도 좋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 사진작가와 커플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청계천 동대문구간

 

조선시대 개천으로 시작된 청계천은 산업화 시기를 지나 복개되었다가, 2005년 도심 복원사업을 통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동대문구간은 특히 유등과 벽화, 디지털 분수가 어우러져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힌다.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분주한 도시도 한결 느긋하게 다가온다. 벤치에 앉아 국화차 한 모금 머금으면 낯선 도시도 포근해진다.

 

 

광장시장 빈티지거리

 

1905년 개장한 광장시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시장으로, 지금은 젊은이들의 레트로 성지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중 빈티지거리는 1970~90년대 옷과 소품, LP판, 군용 점퍼 등으로 가득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전통한복과 기성복 사이를 오가며 진귀한 물건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고, 골목마다 자리한 찻집과 떡볶이집도 정겨움을 더한다.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다.

 

 

방산시장 포장‧문구 골목

 

디자인 전공자와 공방 운영자들이 즐겨찾는 방산시장은 동대문 패션타운 뒤편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시장이다. 종이, 리본, 천, 스티커, 포장상자까지 없는 게 없으며, 도매 단가로 구입할 수 있어 소소한 쇼핑의 재미가 있다. 문구 골목에서는 공책, 펜, 전통 카드류 등 아날로그 감성의 문구류도 구경할 수 있다. 어릴 적 문방구 앞에서 느꼈던 설렘을 다시 마주하고 싶다면 이곳 골목을 천천히 걸어볼 일이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블로그 | 지구별 여행자 운영자

•스튜디오팝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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