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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태국산 막으니 중국산 ‘습격’…고사 직전 PB업계, 반덤핑 역설에 휘청

멈춰버린 생산 라인, 가동률 40% 추락…적자 늪에 빠진 국내 제조사
공공기관조차 외면하는 국산 목재…'알맹이' 빠진 지원책에 업계 절규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건설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수요 절벽에 내몰린 국내 파티클보드(PB) 업계가 ‘중국산의 습격’이라는 이중고를 맞았다. 지난 12월 정부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태국산 제품에 최고 15.1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며 빗장을 걸었지만, 그 빈자리를 더 저렴한 중국산이 빠르게 잠식하는 ‘반덤핑의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7일 관세청 수출입통계 현황에 따르면 2024년 1만 1157톤에 불과했던 중국산 수입량은 2025년 14만 2195톤으로 12배(1,174%) 폭증했다. 태국산 파티클보드(PB) 수입량은 2024년 대비 2025년에 43.3% 감소하자 그 공백을 더 저렴한 중국산이 빠르게 잠식한 것이다.

 

 

국내 가구업계는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원가 절감이 절박한 상황이다. 한 대형 가구업체 구매 담당자는 “태국산 가격이 오르자마자 대안을 찾았고, 중국산이 저렴해 찾게 됐다”며 “국내산과 비교해 단가가 30% 이상 저렴한데 수입선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수입선 다변화’는 국내 제조사인 동화기업과 성창보드에 치명타가 됐다. 태국산 규제로 인한 낙수효과를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저가 수입산 간의 ‘선수 교체’만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PB 생산량은 2023년 78만㎥에서 2025년 71만㎥로 3년 연속 뒷걸음질 쳤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단위당 생산 원가는 오히려 상승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한국합판보드협회 관계자는 “중국산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추가 대응을 고심 중이지만,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국내 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스마트 팩토리 지원과 에너지 비용 보전 등 실질적인 ‘제조업 부흥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 사안은 산림청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범정부 차원의 모니터링 단계가 필요한 사항이다. 협회 측은 “수입 자체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저가 후려치기’를 잡겠다는 것”이라며 “현재 중국산의 유입 속도와 가격 추이를 정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모니터링 결과 중국산의 덤핑 혐의가 명확해질 경우, 태국산에 이어 중국산 PB에 대해서도 전격적인 반덤핑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실제 관세 부과까지는 피해 입증 등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그사이 국내 업체들이 버텨낼 체력이 남아있느냐가 관건이다.

 

국내 PB 생산의 최전방인 동화기업과 성창보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국내 제조 시설을 풀가동해도 시장 수요의 40%밖에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수입산의 저가 공세는 국내 단가 하단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국내 제조사 가동률이 100%여도 수입은 불가피하지만,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저가 제품이 들어오면 국내 생산 체계 자체가 무너진다”며 현장의 위기감을 전했다.

 

일부 업계에서는 "태국산 반덤핑 관세가 시행된 지 딱 한 달 만에 태국 업체들이 중국산에 시장을 뺏기지 않으려고 공급가를 더 내리겠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면서 "태국이 수익을 남기려는 수출이 아니라 태국이 빠진 자리를 중국에 내주지 않겠다는 시장 파괴적 '치킨게임'도 우려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동화와 성창이 풀가동해도 국내 수요의 절반(월간 약 11만㎥ 중 4.5만㎥)밖에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입을 막자는 게 아니다”라며 “다만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하자는 것인데, 현 상황은 도리어 해외 제조사들 간의 저가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내사의 적자만 쌓이는 구조”라고 절규했다.

 

신승훈 한국합판보드협회 이사는 현재의 상황을 '글로벌 무역 갈등의 여파'로 봤다. 신 이사는 "중국은 본래 태국에서 PB를 수입하던 나라였으나 자국 부동산 침체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수출길이 막히자 잉여 물량을 한국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제조사의 고충은 단순히 수입산의 가격 공세만 있지 않았다.

 

정부 정책의 허술함과 공공기관의 무관심이 국내 제조 기반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지난 2025년 국정감사에서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산림청을 상대로 ‘국산목재 활용제품 우선구매 제도’활용이 저조하자 이를 조목조목 짚었다.

 

강 의원은 “지침상 지자체와 정부 기관 포함 138개 기관이 참여해야 함에도, 실제 구매 내역이 있는 기관은 5년 동안 단 21개(15.2%)뿐”이라며, “참여 기관 관리와 실적 점검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같은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조차 작년 국산 구매 비율이 10%도 안 된다”며 주무 부처의 방관을 꼬집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국감 지적 사항에 대해 "관리와 실적 점검이 부진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PB의 최대 수요처인 ‘가구’가 우선구매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점을 근본적 결함으로 꼽는다. 업계 관계자는 “가구가 빠진 제도 아래서 국산 목재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것은 공염불”이라고 지적 하기도 했다.

 

산림청은 교육과 홍보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당장 저가 수입산에 밀려 공장을 멈춰야 하는 기업들에게는 국내 산업 육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산림청 국제산림협력관 담당자는 “태국산에 15% 수준의 관세가 붙으면서 유통사들이 더 저렴한 중국산을 대신 수입하고 있는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관계자는 “전체 수입 물량 파이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아니며, 필요한 물량 내에서 태국산의 빈자리를 중국산이 채우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국내 목재 산업 자급 기반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 ‘마지막 신호’로 보고 있다.

 

중국산의 약탈적 덤핑과 태국산의 치킨게임 사이에서 국내 기업들이 버텨낼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고 진정성 있는 산업 육성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가구 하나를 만들 때도 전적으로 해외 수입국에 의존해야 하는 ‘목재 식민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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