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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이슈체크] 고령화 시대 유언대용신탁…법은 느리고 시장은 빠르다

고령 인구 증가로 유언대용신탁 수요 급증
은행권, 가입 문턱 낮추며 고객 유치 경쟁
금융당국 가이드라인 권고…법적 강제력 없어 한계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시니어 자산관리 시장이 금융권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생전 자산 이전과 상속 설계를 위한 수요가 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유언대용신탁’이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고객이 생전에 금융기관과 신탁 계약을 맺고 사망 이후의 재산 분배 방식을 미리 정하는 상품이다. 유언장처럼 법적 효력이 있으면서도 생전부터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고령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미성년 상속인의 경우 특정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수령 시기를 조정하거나 제2·제3 수익자를 지정하는 등 유연한 상속 설계가 가능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은행권은 최근 유언대용신탁의 가입 문턱을 경쟁적으로 낮추며 시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3조7623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말 2조원대에서 2023년 3조원을 넘어섰고, 2024년 말에는 3조 5000억원을 돌파했다. 업계는 올해 안에 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속을 둘러싼 갈등이 잦아지고, 자산 승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유언대용신탁의 고령 고객 유입이 늘고 있는 추세다.

 

◇ 시니어 맞춤형 신탁상품 경쟁 본격화

 

최근 저금리 기조와 고강도 대출 규제가 이어지자 은행권은 줄어드는 이자이익 보완을 위해 새로운 수익원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비이자이익 확대를 모색하는 은행의 전략과 초고령화 사회에서 시니어층의 신탁상품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며 신탁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대 은행의 신탁 관련 손익은 전년 동기 대비 6.3% 증가한 2392억원을 기록했다.

 

은행권은 유언대용신탁 수요를 가져오기 위한 특화 브랜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KB골든라이프’ 브랜드를 통해 시니어 컨설팅센터를 전국 12곳으로 확대하며 신한은행은 그룹 차원의 통합 자산관리 브랜드 론칭을 준비 중이다. 하나금융은 ‘하나더넥스트’를 통해 상속 및 세무에서 건강 및 취미까지 아우르는 토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금융은 ‘우리원더라이프’를 선보였고 농협은행도 시니어 고객층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고액 자산가 전용’→‘대중 상품’으로 변화

 

은행권의 유언대용신탁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입 금액을 낮춰 문턱을 낮추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국민은행은 최소 가입 금액을 1000만원으로 낮춘 ‘간편형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다. 기존 국민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상품인 ‘KB위대한유산신탁’의 최소 가입금액이 1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입 문턱이 확 낮아졌다.

 

농협은행은 ‘NH사랑THE 종합유언대용신탁’을 지난달 재출시했는데, 기존에는 가입 최소 금액이 3억원이었으나 재출시 상품에서는 5000만원으로 낮췄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1만원으로도 가입할 수 있는 초저가 상품을 운영 중이다.

 

은행권을 넘어 증권사들도 유언대용신탁 시장에 본격 가세하고 있다.

 

신영증권과 하나증권 등 일부 증권사가 관련 사업을 이어왔으나, 삼성증권이 최근 유언대용신탁 컨설팅 브랜드인 ‘삼성증권 헤리티지’를 출범했다. 삼성증권은 해당 브랜드를 통해 고객의 자산 구성에 따라 개별 맞춤 계약이 병행되는 모듈형 구조를 제공할 계획이며 이 과정에서 프라이빗뱅커, 신탁담당자, 세무 및 법률 전문가가 나서 복합적인 상속 설계를 지원한다.

 

◇ 제도 미비…법적 분쟁 가능성도 여전

 

다만 유언대용신탁 시장의 빠른 성장세에 비해 제도적 뒷받침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민법과 신탁법은 유언대용신탁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 법적 분쟁 소지가 남아있다. 예를 들어 상속인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유언대용신탁의 효력이 일반 유언과 동일하게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법원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서울중앙지법은 유언대용신탁 계약 관련 상속 분쟁에서 신탁재산이 유류분 산정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수탁자의 반환 책임은 부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는 유언대용신탁의 법적 지위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또한 유언대용신탁은 일반 유언장과 달리 공증이나 가족 동의 없이 단독으로 체결 가능하다는 점에서 악용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령자나 치매 환자가 금융기관의 권유에 따라 계약을 체결할 경우 본인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신탁 계약 체결 시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는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언대용신탁이 고령사회에서 상속 갈등을 줄이고 자산 승계를 원활하게 돕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시장 규모에 걸맞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시중은행 자산관리 부문 관계자는 “민법과 신탁법 내 명확한 기준 마련과 함께 고령 소비자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며 “제도적 공백과 소비자 보호 한계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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